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리아 여왕 (문단 편집) === 재위 60주년, 다이아몬드 주빌리 === [[파일:290327-1338459379.jpg]] [[1896년]] [[9월 23일]]부로 당시까지 영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할아버지 [[조지 3세]]의 재위기간을 경신했다. 식민지 장관 조지프 체임벌린은 다음 해인 [[1897년]] 즉위 60주년(다이아몬드 주빌리) 행사 때 이를 함께 기념해 대영제국과 여왕을 더욱 빛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. 이에 따라 1897년에 거행된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에서는 영국 식민지 자치령의 모든 총리와 총독 들이 초대받았고, 거창한 행렬에는 영국 전역의 군대들도 참여했다. [[1897년]] [[6월 20일]], 이날은 일요일이었기에 여왕은 윈저 성 내의 성 조지 예배당에서 기도를 했다. [[6월 21일]]에는 외국 사절들을 접견하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왔다. 공식 행사일인 [[6월 22일]], 여왕의 행렬은 [[세인트 폴 대성당]] 야외에서 거행된 기념식에 이어 런던 남부와 국회의사당을 지나 버킹엄 궁전으로 돌아왔는데, 무개마차에 탑승한 노구의 여왕을 향해 수많은 인파가 축하와 환호를 아낌없이 보냈다. 이날 저녁 여왕은 '내가 거리를 지날 때마다 본,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열정과 환희로 가득한 모습에 진심으로 놀랍고 감동받았다'고 일기에 적었다.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공식 만찬과 더불어 여왕의 며느리 [[덴마크의 알렉산드라|알렉산드라 왕세자비]]는 런던의 빈민 40만 명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행사를 베풀었다. 영국 역사상 처음 거행된 다이아몬드 주빌리는 여왕과 대영제국 모두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.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야외에서 거행된 기념식은 78세의 고령인 여왕에게는 무리여서 그로 인해 류마티스성 관절염이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. 빅토리아 여왕 이후 2번째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거행된 것은 115년 뒤인 [[2012년]], 여왕의 현손녀인 [[엘리자베스 2세]] 때였다. 당시 조선에서도 이 기념식에 사절을 파견했는데, 그 주인공은 [[영국]], [[독일]], [[프랑스]], [[러시아]], [[이탈리아]], [[오스트리아]] 6개국 겸임공사였던 [[민영환]]이었다. 그는 [[1897년]] [[3월 24일]] 4명의 수행원과 함께 [[서울]]을 출발해 [[나가사키]], [[상하이]], [[마카오]], [[싱가포르]]를 거쳐 [[인도양]]을 지나 [[수에즈 운하]]를 통과해 [[지중해]]에 도달했다. 여기서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 [[흑해]]로 들어가 [[오데사]]에 상륙한 다음 기차로 [[상트페테르부르크]]에 도착해 러시아 황제 [[니콜라이 2세]]에게 국서를 바치고 열흘 동안 체류하다가 [[6월 1일]]에 [[런던]]으로 출발했다. 민영환 일행이 런던에 도착한 것은 [[6월 5일]]이었으며 [[6월 22일]]에 거행된 기념식에 참석하고 [[7월 17일]]에 귀국길에 올랐는데, 민영환은 이때의 노정을 <사구속초(使歐續草)>라는 여행기로 남겼다. [[6월 26일]]에는 [[영국 해군]]의 대함대(Grand Fleet)가 관함식을 개최했다. 이때 선박 엔진의 역사를 바꾼 아주 유명한 난입 사고가 있었다. [[증기 터빈]] 문서 참고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